전국 3만 675명의 어르신이 또 다른 어르신을 돌보고 있습니다. 숫자만 보면 꽤 인상적입니다. 건강가정사 자격을 준비하면서 지역 돌봄 체계를 공부했던 저로서는, 이 모델이 단순한 일자리 숫자 채우기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몇 가지 걱정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통합돌봄, 왜 '어르신이 어르신을 돕는' 구조인가
노노케어(老老 Care)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노케어란 고령자가 또 다른 고령자를 돌보는 상호 부조 방식의 돌봄 구조를 뜻합니다. 일본에서 먼저 주목받았고, 국내도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운영 중인 '통합돌봄 보살펴드림' 사업이 바로 이 노노케어 모델을 제도화한 것입니다. 건강관리, 식사 지원, 위기가구 발굴, 주거환경 개선, 위생 지원까지 5개 분야로 나뉘어 있고, 참여자의 86.1%인 2만 6419명이 건강관리 분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건강가정사 과정을 공부할 당시, 저는 복지 사각지대(welfare blind spot) 문제를 꽤 깊이 들여다봤습니다. 복지 사각지대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행정망에 포착되지 않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을 의미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사각지대를 행정 공무원만으로 메우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담당자 한 명이 수백 가구를 맡는 현실에서, 문 앞까지 직접 찾아가는 인력이 얼마나 절실한지는 공부를 조금만 해봐도 바로 느껴집니다.

이 사업이 현장 중심 모델로 의미 있는 이유는 몇 가지입니다.
- 같은 세대의 어르신이 방문하기 때문에 수혜자 입장에서 심리적 거부감이 낮습니다.
- 은퇴 이후 사회적 역할을 잃은 신노년 세대에게 보람과 소득을 동시에 줍니다.
- 안부 확인, 복약 지원, 병원 동행처럼 행정 인력이 하기 어려운 세밀한 돌봄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대구의 고독사예방 도우미, 제주의 아름동행 병원동행 매니저, 경남 밀양의 고쳐드림 사업 등은 지역 특성에 맞게 변형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하향식 정책이 아니라 지역이 직접 모델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2025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를 넘어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출처: 통계청). 돌봄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공급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이 구조적 공백을 메우는 방식으로 노노케어 모델은 꽤 현실적인 선택지입니다.
전문성 부족, 이 문제를 지금 짚어야 하는 이유
그런데 저는 한 가지 지점에서 멈추게 됩니다. 전체 참여자의 86%가 집중된 건강관리 분야에는 복약 지원과 병원 동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건 단순한 말벗이나 안부 확인과는 차원이 다른 업무입니다.
복약 지원(medication adherence support)이란 단어를 보는 분들도 있을 텐데, 이는 단순히 약을 챙겨드리는 것을 넘어 복약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이상 증상이 있을 때 즉각 대응하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쉽게 말해, 고령자의 건강 상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업무입니다.
그런데 직무 매뉴얼 개발은 올해 9월에야 예정되어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사업은 이미 3만 명 넘게 현장에서 돌아가고 있는데, 표준화된 직무 지침이 없다는 건 저로서는 꽤 아찔한 상황으로 읽힙니다. 건강가정사 공부를 하면서 돌봄 현장의 응급처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리스크 매니지먼트(risk management)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리스크 매니지먼트란 사업 운영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관리 방식입니다. 노노케어 특성상 활동하는 분 자신도 고령자이기 때문에, 돌봄 현장에서 수혜자뿐 아니라 활동자에게도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단순 실적 위주의 양적 확대보다 이 부분에 대한 안전망이 먼저 갖춰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도 그 의견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물론 2027년부터 수행기관 평가와 연계한 유인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은 긍정적입니다. 평가 체계(evaluation framework)란 사업 수행기관의 성과와 질을 객관적으로 측정해 보상이나 패널티와 연결하는 구조입니다. 이 체계가 잘 작동하면 형식적 운영을 걸러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27년이면 지금으로부터 2년 후입니다. 그 사이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백은 누가 책임지는지, 그게 솔직히 걸립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원칙 하나는, 좋은 의도의 정책도 현장 실행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히려 취약계층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업이 그 함정을 피하려면, 9월 매뉴얼 배포 이후 실질적인 교육 이수 여부를 의무화하고, 활동 중 응급상황 프로토콜을 명확히 마련하는 후속 조치가 반드시 따라와야 합니다.
정책의 방향 자체는 옳다고 봅니다. 초고령사회에서 어르신이 돌봄의 대상이자 동시에 주체가 되는 구조, 저는 이게 앞으로의 복지 패러다임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얼마나 많이'보다 '얼마나 안전하게'가 먼저여야 합니다. 사업 확대 속도만큼 교육과 안전 체계가 함께 달려줘야, 이 모델이 진짜 의미 있는 인프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서 사업 현황과 9월 이후 발표될 직무 매뉴얼을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복지·보건 분야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