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구에서 물이 역류하는 걸 직접 목격해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몇 년 전 여름, 도심 하천이 범람하고 도로가 통째로 잠기는 장면을 눈앞에서 봤습니다. 그때 든 생각이 "하수구를 좀 더 크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였는데, 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단순한 발상이었는지 모릅니다. 이번에 정부가 군산·제천·증평·천안을 물순환 촉진구역으로 처음 지정하면서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물관리 취약성 — 하수구를 넓히면 해결된다는 착각
일반적으로 침수 피해를 막으려면 하수도 용량을 키우면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집중호우가 쏟아지던 그날, 배수구는 이미 역류하고 있었고, 문제는 하수관 하나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물길이 막혀 있다는 데 있었습니다.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포장도로 위를 그대로 흘러내리면서 순식간에 물난리가 났던 겁니다.
이번에 지정된 4개 지역은 단순한 행정 선정이 아닙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2024년 실시한 물순환 왜곡 및 물관리 취약성 평가에서 군산시와 천안시는 종합 취약성 Ⅰ등급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취약성 Ⅰ등급이란 물순환 왜곡 수준이 가장 심각한 상태를 의미하며, 홍수·가뭄·수질 오염 등 복합적인 물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분류된 것입니다. 제천시와 증평군은 Ⅱ등급이지만 두 지역 모두 도심 하천 범람으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전력이 있고, 용수 수급 불안정 문제도 이어지고 있어 우선 대응 대상으로 선정됐습니다.
이번 지정의 법적 근거는 2023년 10월 제정된 물순환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즉 물순환촉진법입니다. 물순환촉진법이란 기존에 상수도·하수도·하천 관리가 부처별로 따로 운영되던 체계를 하나로 통합해, 유역 단위에서 물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통합 물관리 체계를 법제화한 것입니다. 이번 촉진구역 지정은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실질적 집행 사례입니다(출처: 기후에너지환경부).
물순환 촉진구역으로 지정되면 기후부가 직접 물순환 촉진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지방정부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하게 됩니다. 종합계획에는 다음과 같은 맞춤형 사업들이 담길 예정입니다.
- 침수 예방을 위한 빗물 침투·저류 시설 확충
- 가뭄 대비 안정적 용수 공급 기반 구축
- 도심 하천 수질 개선 및 수생태 복원
- 상하수도·하천 등 물관리 시설의 통합 연계 운영
저는 이 방향 자체는 옳다고 봅니다. 도시의 불투수면적률(불투수면 비율)이 높아질수록 빗물이 땅속으로 흡수되지 않고 지표면을 따라 집중되는 지표 유출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불투수면적률이란 아스팔트·콘크리트처럼 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포장면이 전체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데,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이 수치가 높아져 홍수 위험이 커집니다. 그날 제가 목격한 침수도 결국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종합계획과 지자체 격차 — 계획이 현실이 되려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고민이었습니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는 "드디어 제대로 된 대응이 나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구조를 들여다볼수록 걱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기후부가 종합계획을 수립하더라도 실제 사업 집행은 지방정부가 맡는 구조입니다. 재정 자립도와 전문 인력이 충분한 지자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계획이 서류 위에만 머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공모에는 총 13개 지방정부가 신청했고, 그중 4곳만 최종 선정됐습니다. 제가 직접 공모 과정을 살펴봤는데, 선정 기준에는 사업계획 우수성, 추진 의지·역량, 재정 투자 형평성, 시급성이 포함됐습니다. 탈락한 9개 지역도 나름의 물 문제를 안고 신청한 곳들입니다. 이 지역들의 물관리 사각지대를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대한 후속 방안은 아직 뚜렷하지 않습니다.
유역물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선정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유역물관리위원회란 특정 하천 유역을 단위로 물 관련 계획과 정책을 조정·심의하는 기구로, 중앙과 지방, 관련 부처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 구조입니다. 이 구조가 실질적으로 작동한다면 부처 간 엇박자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과거 유사한 통합 물관리 사업들이 협의 단계에서 오래 지체된 전례가 있어, 속도 면에서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저는 이번 종합계획 수립 과정에서 지역별 협의체를 구성한다는 부분을 눈여겨봤습니다. 지자체, 관계기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라면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계획이 내려오는 방식보다는 현장 실정이 반영될 여지가 생깁니다. 제 경험상 현장과 동떨어진 계획은 집행 단계에서 반드시 어긋납니다. 협의체가 형식적 구성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토론 장이 되는지가 이번 사업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리하면, 이번 물순환 촉진구역 지정은 분명히 의미 있는 첫 걸음입니다. 집중호우와 극한가뭄이 번갈아 찾아오는 지금, 도시의 물길을 통합적으로 다시 설계하겠다는 방향은 옳습니다. 다만 계획이 현실이 되려면 지자체 간 실행 역량 격차를 줄이는 지원 체계와, 탈락 지역에 대한 보완 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합니다. 군산·제천·증평·천안의 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할 때, 나머지 지역으로의 확산 논의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참고: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