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가족 구성원 전원이 "내가 죽였다"고 고백하는 기이한 구성을 통해,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둡고 뒤틀린 심연을 보여줍니다.
- 줄거리: 하얀 불꽃 속에서 피어난 고백의 연쇄와 비극
소설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 도쿄 교외의 평범한 주택가에서 네 살배기 여자아이 '나오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나오코는 이 집의 주인이자 평범한 가장인 '사토코'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사토코의 친정어머니와 여동생 '유키코'가 함께 사는 평화로운 가정의 소중한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가 실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 마당의 한구석에서 싸늘한 사체로 발견되면서 집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려는 찰나,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진다. 나오코의 이모이자 사토코의 여동생인 유키코가 "내가 아이를 죽였다"며 자수하고 나선 것이다. 유키코는 평소 형부와의 부적절한 관계와 언니에 대한 깊은 열등감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사건이 유키코의 단독 범행으로 종결되는 듯 보였던 그 순간, 또 다른 가족이 경찰의 문을 두드린다. 아이의 엄마인 사토코 역시 "진짜 범인은 나"라며 자신의 범행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사토코는 동생과 남편의 불륜을 진작 알고 있었으며, 그 복수심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아이를 살해했다고 말한다.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 집안에서 두 명의 자책 용의자가 나온 것도 모자렌조 미키히코의 심리 미스터리 걸작 《백광(白光)》은 한 가정의 일상 밑바닥에 도사린 증오와 집착, 그리고 비극적인 이기심을 해부하듯 그려낸 수작입니다. 네 살배기 어린 라, 평소 무기력하고 조용했던 아버지(사토코의 남편)와 노모마저 각자 자신만의 은밀한 알리바이와 범행 동기를 폭로하며 서로가 진범임을 자처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살인 사건을 두고 가족 구성원 전체가 "내가 죽였다"고 다투는 기괴한 상황 속에서, 수사를 맡은 형사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가족들의 고백이 이어질수록 겉으로는 화목하고 완벽해 보였던 가정의 얇은 살가죽이 벗겨지고, 그 아래 숨겨져 있던 불륜, 시기, 유산(遺産)을 둘러싼 탐욕, 그리고 평생을 축적해 온 상호 간의 증오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소설은 누구의 고백이 진실이고 누구의 고백이 거짓인지를 치밀하게 교차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모든 인간의 이기심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낸 잔혹하고 슬픈 진실의 종착지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간다.

- 인물 분석: 기만과 집착으로 얽힌 잔혹한 가족 군상
1) 사토코 (엄마 / 완벽을 연기하는 통제주의자)
피해자 나오코의 어머니이자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집착이 광기에 서린 인물이다. 그녀에게 가정은 나의 자존감이 자라는 공간이자 사회적으로 완벽해 보여야 하는 무대이다. 동생인 유키코에게 늘 우월감을 느끼며 살아왔지만, 남편과 동생의 배신을 알게 된 후 내면이 완벽하게 붕괴한다. 사토코의 고백은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동생에게 판정승을 거두고 남편을 영원히 정신적 감옥에 가두려는 철저한 계산과 복수심에서 비롯된 왜곡된 모성애의 방증이다.
2) 유키코 (이모 / 결핍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파괴자)
사토코의 여동생으로, 평생을 언니의 그림자에 가려진 채 결핍감을 느끼며 살아온 인물이다. 언니가 가진 모든 것을 부러워하고 증오한 나머지, 형부를 유혹해 불륜을 저지르는 파격을 행한다. 조카인 나오코를 향한 감정 역시 순수한 애정이 아닌, 언니의 가장 소중한 조각을 파괴하고 싶다는 뒤틀린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가장 먼저 손을 든 이유는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언니의 완벽한 가정을 완전히 파멸시키고 자신이 극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기만적인 욕망 때문이다.
3) 사토코의 남편 (아버지 / 방관자이자 모든 균열의 원인)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결여된 채, 자신의 성적 욕망과 안위만을 쫓는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처제와의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아내의 눈치를 보고, 사건이 터진 후에는 진실을 밝히기보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전전긍긍한다. 그가 자신이 범인이라고 나서는 맥락 역시 아이에 대한 속죄라기보다는, 아내와 처제의 숨 막히는 집착과 죄책감의 굴레에서 차라리 도망치고 싶어 하는 도피주의적 성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 내 생각: '백광'이 비추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렌조 미키히코의 《백광》을 읽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러우면서도 멈출 수 없는 기묘한 문학적 경험이었다. 책의 제목인 '백광(흰 빛)'은 흔히 순수함이나 구원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모든 사물의 본질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비추어 눈을 멀게 만드는, 잔인하고 가혹한 한여름의 태양광을 의미한다. 그 강렬한 빛 아래에서 가족이라는 성역(聖域)은 여지없이 해체된다.
보통의 미스터리 소설이 누군가 죄를 지은 '진범'을 숨기고 서로가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플롯을 취한다면, 《백광》은 그 반대의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전율을 돋게 한다. 서로가 죄인을 자처하는 기이한 풍경의 이면에는, 이타적인 희생정신이 아니라 '내가 죄를 뒤집어씀으로써 상대방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과 부채감을 안기겠다'는 지독한 악의가 깔려 있다. "내가 죽였다"는 말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반성이 아니라, 상대를 파멸시키기 위해 휘두르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였던 것이다.
작가는 이 섬뜩한 고백의 릴레이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흔히 가정을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울타리라고 믿지만, 때로는 서로를 가장 잘 알기에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지옥이 될 수도 있음을 소설은 증명한다.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며 미소를 나누던 이들이 각자의 가슴속에 서로를 향한 칼날을 갈고 있었다는 사실은, 피를 나눈 관계조차도 인간 본연의 이기심과 결핍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하다는 서늘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무엇보다 가슴이 아팠던 것은 이 어른들의 추악한 욕망과 감정싸움 속에서 도구처럼 소비되고 희생당한 네 살배기 나오코의 존재였다. 아이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도 가족들은 아이의 영혼을 위로하기보다, 그 죽음을 빌미로 서로를 저주하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바쁘다. 인간의 위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목격한 것 같아 씁쓸함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백광》은 정교한 트릭으로 독자를 속이는 추리 소설을 넘어, 인간의 심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끄집어낸 심리 스릴러의 정점이다. 한여름의 눈부신 하얀 빛이 가득한 거실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고백들이 그 어떤 피비린내 나는 묘사보다 잔혹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단히 탐미적이면서도 파괴적인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한다.